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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

종교적인 고민으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대할 때 주의할 점

천성이 쾌활하거나 세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지 못합니다. 이 글은 알렉산더 목사가 종교적인 고민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 지를 상세히 설명한 글입니다. 그는 스스로도 이런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이런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지를 자세히 기록해놓았습니다. 꼭 종교적인 문제로 우울해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글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의외로 큰 우울증의 폐해

1. 그러한 증상으로 고통 당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 비참한 인생 중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나쁜 질병 중 하나를 당하고 있는 걸로 보라. 우울증은 사고력과 행동력을 무력화시킨다. 그 질병은 그 사람들의 생각을 뒤죽박죽 어지럽혀 놓고 고뇌와 고민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이러한 병적인 마음의 상태가 깊이 정착되고, 모든 부분에 그 유독한 영향력을 확산시키면, 논증이나 합리적인 동기를 부여해서 그걸 막아보려는 건 정말 허망한 짓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일은 마치 열병이나 통풍이나 늑막염을 논증으로 저지해 보려는 허망함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겪는 아주 무서운 증상 중 하나는 수면부족이다. 다른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은 수면을 통해서 원기를 되찾고 새로워지는데 이 질병에 걸리면 잠도 달아날 뿐만 아니라, 너무 마음이 산란하여 잠을 잘 수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은 원기를 되찾기는커녕 고문을 당하는 사람 같다. 영혼의 기능들도 약해져 그 작용이 활발치 못하고 뚜렷하지 않다. 그 사람의 몸도 동시에 고통을 당하여 야위어간다.

 

 

이 질병을 보다 더 끔찍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 질병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이 경과한 다음에야 그 질병이 극에 달하는 경우도 흔하다. 또 그 질병의 증상이 약화되는 과정도 대단히 느린 것이 보통이다. 모든 방면에서 생각할 때 이 질병은 서글프고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광선도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어둠의 상태라 할 수 있다. 대개 몸에서 그 증상이 나타나다가 나중에는 마음으로까지 번진다.

 

나는 어떤 약으로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말해주기 위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그 치료약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의학적인 방면에 전문인 사람에게 가보라고 충고는 하겠다. 특히 스스로 그러한 질병에 속한 것을 체험한 의사들에게 가보라 하겠다. 왜냐하면 그 질병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지 않고는 전혀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리챠드 그린함(Richard Greenham, 1535~94)이 말한 바와 같이 “육신의 의사들은 몸 밖에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반면에 영적인 의사는 몸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마음만 살펴볼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 가능성은 있다

2. 이러한 질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부드러운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여러분도 같은 고통을 당하기 쉬운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혼이나 여러분의 느낌이 아무리 기운차고 활발하다 할지라도, 그것과 정반대의 경우를 만나 오랫동안 큰 고통을 겪고 심령이 그와 같은 상태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우울증에 빠질 소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참아내기 힘든 참화를 여러 번 당하는 사이에 그러한 어두운 구렁으로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충고한답시고 질책 말아야

3.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들에게 거친 말투를 쓰지 말라. 그렇게 하면 오히려 그들은 더 곤혹스럽게 되고 더 침체에 빠질 뿐이다. 결코 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충고한다고 하면서 그러한 사람들을 언제나 책망하고 질책하는 걸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감히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충고자들은 그러한 질병을 스스로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만일 그러한 질병에 대한 무슨 감각이라도 있다면 자기들의 그 거친 말투가 불에다 기름을 붓는 격이고, 그 질병을 당한 자들을 치료하기는커녕 그 상처를 헤집고 더 성나게 한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존 도드(John Dog, 1546~1645)는 부드럽고 자비하고 온유한 심령 때문에 그러한 증상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다루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 중 하나로 여겨졌다. 아마 피코크(Peacok) 씨와 드레이크(Dreak) 부인의 수기를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확신할 것이지만 그 사람처럼 긍휼어리고 자비로운 사람은 없었다. 피코크 씨와 드레이크 부인은 존 도드와 나눈 대화로 크게 소생함을 얻었다.

 

고통 받는 자의 입장에서 이해를

4. 만일 이러한 불행한 마음의 상태에 빠진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자신들의 느낌과 비통을 말할 때 ‘자넨 무언가 이해가 부족하다’는 식의 느낌을 나타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점에서 큰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한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겪는 무섭고 비참한 고민을 말하면 친구들은 대부분, ‘그건 다 상상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공상에 불과한 거야’, ‘쓸데없이 변덕을 부리지마’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그 질병이 틀림없는 질병이고, 사람이 겪는 어떤 것만큼 그 질병을 겪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은 큰 것이다. 물론 그들의 상상력이 혼란스러워졌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더 깊은 질병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친구가 믿어주지 않으면, 그 친구는 자기들의 비참에 대하여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들에게 어떠한 연민의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 버린다.

 

정상인의 행동을 강요하지 말라

5. 우울증에 빠진 친구들에게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지 말라. 그들은 마치 뼈가 부러진 사람들과 같아서 활동할 능력이 없다. 그들은 그 질병 때문에 무얼 해야 할지 당황해 있으며 생각도 뒤틀려 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큰 자비를 베푸는 셈이다. 그러나 주도면밀한 생각을 요하는 어떤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오히려 그들의 증상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라도 듣도록 해주어야지 않겠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한 증상이 심해서 끊임없이 계속 고통을 당할 정도라면, 질서정연한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에 잘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상태가 그 정도로 비참한 것이 아니라면, 부드럽고 친절하게 설득하여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데리고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존 도드가 드레이크 부인에게 사용한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는 짐이 어찌나 컸는지 거기에다 감히 조금이라도 무엇을 더 지울 수 없었다. 다만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자신을 의식하여 마음을 쓰기가 극히 쉬웠고, 언제나 그 마음 속에서 그녀를 소멸시키고 있는 불에 연료를 조금이라도 넣으면 금방 절망에 빠질 그러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가 집회에 참석하는 곳마다 찾아가서 그 예배를 집전하는 목사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었다. 그러한 사람이 여기에 와서 듣고 있으니 조금도 상처받아 좌절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마귀의 작용으로만 몰아붙여서는 안돼

6. 이러한 질병이 마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라. 물론 마귀가 그러한 질병을 유발시키는 작용을 할 수도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특히 마음을 괴롭히고 산란케 하여 몸도 고통스럽게 하는 작용도 나타낸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진 사람의 모든 감정이나 말을 다 사단에 의한 것이라고 떠넘겨 버리는 건 매우 지혜롭지 못하다. 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도, 고열이 나는 여러 징후들처럼, 몸의 질병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당하는 자들도 많다.

 

병든 사람이 신음하며 아파하는 몸짓을 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그러한 귀추를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들이 많다. “어째서 네 경우를 그처럼 골똘하게 생각하여 마귀를 이롭게 하느냐?” 그러나 그러한 생각에 집착하게 하는 것이 그 질병의 성질 자체라 할 수 있다. 고열이 나는 사람보고 “어째서 너는 건강해지지 않느냐, 어째서 병을 앓고 있느냐?”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어떤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 그 병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고 상상하려는가? 그렇다면 가시 침대에 눕거나 용광로 안에 들어 앉아 있기를 좋아할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마귀가 그러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역사해야 할지 알 것은 뻔한 이치다.

 

마귀는 불화살을 쏘아댐으로써 완전히 절망에 빠지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쓸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겪는 모든 것이 다 마귀로부터 온다고 그 사람들을 설득한다면, 그들은 실제로 자기들이 악한 귀신에 들려 있다는 견해를 유추해 낼 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불행한 조건에 빠져서 온전한 마음을 가질 수 없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귀에 대하여 전혀 송사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증상을 앓고 있는 친구들더러, “자네는 지금 마귀를 위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거짓되이 참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악담에는 참을성으로 대해야

7.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그 어느 것에 대하여 큰 놀라움과 이상한 생각을 나타내지 말라.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무슨 말인들 하지 않겠는가? 영원토록 자신들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욥 같은 사람도 자기의 난 날을 저주하여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라는 여호와의 질책을 받았다. 그들이 지독한 불평의 말을 토해낸다 할지라도 놀라지 말라. 혀는 언제나 아픈 치아에 대해 말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영혼이 너무나 초조해 있다. 불평하여 얻는 것이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음울한 상태에 빠진 자신들을 보며 불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아마 그들은 다윗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그러나 그들은 참을 수 없어 신음하고 더 울다 나중에는 그 눈이 슬픔으로 곤비하게 된다. 그들이 격노하여 찌르는 말을 해도 그걸 되받아 앙칼지게 말하지 말라. 병든 사람들은 역정내기 쉽다. 길고 쓰라린 질병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그들이 보여주었던 착한 기질이 다 없어진 걸 발견하면서도, 그들을 참아내지 못하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큰 잘못이 있는 것이다.

 

놀라지 않게, 상냥스럽게

8. 그들에게는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려주지 말라. 다른 사람들에게 덮쳐온 서글픈 재난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라. 그들의 마음은 이미 무서운 일들을 생각하고 있으며, 자기들이 어떤 깜짝 놀랄 일을 들으면 그때마다 더 무서움을 느끼고, 마음의 갈피를 잃은 그들은 상상의 날개를 펴 자기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힐 채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더 강한 과격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또 그들이 듣는 자리에서 재미있어 하거나 촐싹거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런 걸 보면 그들은 자기들에게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동정심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무게를 지키면서 상냥스럽게 대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태도다. 내가 충고를 할 수 있다면, 천성적으로 우울질 성향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보고 공부하라거나 많은 연구를 요하는 어떤 일을 강요하지 말라고 일러주겠다. 그들이 자기 자신의 생각 때문에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은혜 깨닫게

9. 그러나 그들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그들의 질병이 오래 계속되리라고 부모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울증 환자들에게 있어선 그러한 느낌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것이 가장 기분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빨리 낫게 될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라. 하나님께서 순간적으로라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의 영을 일으키려 애를 쓰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은혜를 베푸신 사례를 말해주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질병을 재빨리 치료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롭고 화해어린 얼굴을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실 수 있음을 말해주라.

 

치유 받은 사람들의 사례 들려줌도 중요

10.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다가 치료받은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이야기해 주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그러한 슬픔의 짐을 지고 침체당한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그러한 조건에 처해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확신케 하는 것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가인이나 유다보다 더 악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경우는 다른 데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유사한 비통과 어두움에 처해 있다 건짐 받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진술하는 일은 중요하다.

 

나도 복음의 사역자들이던 로우즈웰(Rosewell) 씨나 포터(Porter) 씨의 경우와 같은 사례들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포터 씨는 6년 동안 우울증으로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다 완전이 나아 후에 하나님의 얼굴 빛을 받아 즐거워하였다. 내 자신도 거의 2년 동안 몸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영혼에는 더 큰 고통을 겪었다. 그때 나는 평강을 얻거나 도움을 얻을 어떠한 전망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은혜와 긍휼을 통해 나를 회복시키셨다.

 

에딘버러에서 목회를 했던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1554~1631)는 20년 동안이나 양심의 공포를 느끼다가 후에 건짐을 받았다. 그처럼 어둡고 사나운 폭풍의 밤을 지낸 그 다음 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밝은 빛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그 밖에도 많다. 존 폭스(John Foxe)는 그의 <순교열전>(Book of Martyrs)에서 5년 동안 내면적 고통으로 쇠약해지고 기진한 존 그로버(John Glover)란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사람의 정도는 어찌나 심했던지 밥을 먹을 때도 평안이 없었고 잠을 잘 때도 평안을 누리지 못하였으며, 인생의 어떠한 즐거움도 누릴 수가 없었다. 자기는 마치 지옥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 같이 생각될 정도로 당혹해 있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선한 종은 이러한 모진 가공스러운 시험과 사단의 공략을 받은 후에 그 모든 고통에서 건짐받았다. 그 결과 이미 하늘에 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죄를 죽이는 사람이 되었다.

 

위하여 기도하라, 그러나 은밀히

11. 우울증에 빠진 친구들을 위해서 취해야 하는 다음 행동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 기도할 빛이나 침착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은밀히 그들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열정적인 기도로써 여러분의 영혼을 녹이도록 하라. 하나님만이 그들을 도우실 수 있다는 것을 알라.

 

피코크 씨는 존 도드와 다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같이 패역무도한 자를 위해서 기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세요.” 도드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친구들을 일으켜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려 일어나실 것입니다.” 기도 이외에 어떤 것도 그들에게 유익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질병은 다른 어느 것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지독한 병이다. 포도주에 취한다든지 친구들과 어울려 자신들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결단코 이러한 질병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합십하여 끈질기게 구할 때 응답

12. 여러분 자신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 친구들더러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라. 많은 선한 사람들이 함께 간구하면 그 부르짖음은 하나님 앞에 더 잘 열납되고 더 유효하다. 온 교회가 합심하여 사슬에 묶인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을 때 베드로는 금방 구출되었고, 그것도 그들이 기도하는 시간에 구출받았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신자들이 하늘에서 큰 분깃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으로 합심하여 끈질기게 구하는 것을 기꺼이 수락하신다. 내 자신도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 큰 도움을 입었다. 특히 몇 날을 따로 잡아서 내 비참한 조건을 가지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갔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게 긍휼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막지 아니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리로다!

 

 

복음에서 찾을 것을 율법에서 찾음으로 비참

13. 마음에 고통을 받는 그 가련한 친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주권적인 은혜를 항상 생각하게 하라.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심을 자주 생각하도록 해주라.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도 그들의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긍휼어린 생각도 자신을 정죄하는 그들의 자책감보다 훨씬 높음을 자주 새겨주라. 위대한 중보자를 통해 은혜와 힘을 바라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라. 그리고 어둠과 불신앙으로 팽배한 자신들의 영혼을 너무 지나치게 바라보지 말라고 일러주라. 자기들의 상태를 떠나 하나님의 경륜을 생각하도록 해주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죄인을 용서하시는가를 보여주며, 믿고 긍휼에 대한 소망을 가지라고 부추기라.

 

드레이크 부인은 절망적인 어둠의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자기의 상태를 적어 여러 걸출한 목사들에게 익명으로 보내곤 했다. 자기같이 믿음도 없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이나 사람을 향한 사랑도 전혀 없는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 본성적인 애정도 없고 모든 방편을 다 거부하며 남용했던 이런 사람이 하늘에 갈 소망이 있겠느냐는 내용의 글을 써 보내곤 했다. 그 목사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그러한 사람도, 심지어 그보다 더 악한 사람도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은총을 받게 되며 회심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목사들의 대답은 그녀의 고통을 많이 덜어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복음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을 율법 안에서 찾았던 것이 내 모든 비참의 근본이었다.” 로저스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신의 체험으로 볼 때 그러한 사람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부드럽고 온유한 방식이 최고라고 증거할 수 있다.”

 

아키발드 알렉산더, <영적 체험, 회심에서 임종까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