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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암(순결한 뱀) 프로필 및 연락처

 

블로그라는 작은 공간에서 의미있는 만남이 이루어지길

 

검은뱀 이야기

 

옛적에 뱀이 있었다.

 

그는 하늘이 낸 짐승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웠다. 세상의 감추어진 것들이 그의 눈앞에는 밝히 드러나보였다. 그는 만물 사이로 기어다니며 만상을 꿰뚫어보았다. 때때로 그 자신도 스스로의 지혜에 감복하였다. 그는 물위에 비친 자신의 반짝이는 검은 비늘을 보며 스스로를 자랑하고 스스로를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하늘에서 흰 비둘기를 보았다. 그는 땅을 기어다니며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토록 흰 빛깔은 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할 수 없을만큼 흰 비둘기였다. 뱀은 넋을 잃고 비둘기를 올려다보았다.

 

비둘기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비둘기를 쫓아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 빛을 좀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의 눈앞에 드러나지 않은 비밀은 지금껏 하나도 없었건만 그 눈부신 흰 빛은 감추어진 신비였다. 뱀은 비둘기를 따라 한참을 기어갔지만 비둘기는 결국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문득 타는 듯한 갈증에 뱀은 연못가를 찾아 물을 마시려 했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라 우뚝 멈추었다. 수면에 비친 그의 몸은 검은 비늘로 뒤덮여 흉측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원래가 검은 뱀이었고 자신의 검은 빛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자랑했던 그 빛깔은 이제 흉측하게만 보였다.

 

뱀은 너무 놀라 한동안 혀만 날름거렸다. 그리곤 곧 깨달았다. 하늘에서 보았던 눈부신 흰 빛이 그의 눈을 밝혀주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가 검은 뱀이라는 것이 싫어졌다. 흰 뱀이 되고 싶어졌다.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던 그 찬란한 새와 같이 희어지고 싶어졌다.

 

그는 연못으로 들어가 몸을 씻고 또 씻었다. 바위에 몸을 긁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자기의 검은 비늘이 벗겨지고 희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상처가 나서 피가 날 뿐 모든 일이 허사였다. 헛되고 헛된 노력이었다.

 

결국 그는 흰 비둘기를 찾아 어떻게 하면 그처럼 희게 될 수 있는지 묻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는 만물 사이로 기어다니며 비둘기를 찾아헤맸다. 그는 숲 속의 짐승들에게 흰 비둘기가 어디로 갔는지 물었지만 어떤 짐승도 그 비둘기를 알지 못했다.

 

오랜 여행에 지친 뱀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그는 꿈 속에서 그리운 빛깔을 보았다. 만상(萬象)을 볼 수 있는 그의 눈을 눈부시게 했던 빛.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그의 지혜 앞에서도 풀리지 않는 신비로 남았던 빛. 그 눈부시게 신비로운 흰 빛의 비둘기는 또다시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뱀은 몸을 뒤척이다 잠에서 깼고 그 비둘기를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

 

뱀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넓고 푸른 하늘이여! 당신은 내게 지혜를 주었으나 나의 모든 지혜로도 얻지 못할 것을 지금 구하오니 나로 검은 허물을 벗어버리고 비둘기 같이 희고 순결한 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기를...!"(2014년 여름)

 

...

 

뱀이 비둘기를 찾아 헤맨 지 3년째 되는 해에 그는 얼룩덜룩한 비둘기와 만나게 되었다. 비록 그 비둘기는 새하얀 빛은 아니었지만 군데군데 흰 빛을 띠고 있었다. 얼룩덜룩한 비둘기는 자기가 새하얀 비둘기를 보았노라며 지금도 그 새하얀 비둘기를 따라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뱀은 반가워서 어디로 가면 그 새하얀 비둘기를 만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처럼 희어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얼룩덜룩한 비둘기가 대답했다. '흰 비둘기의 이름을 전심으로 힘껏 부르기만 하면 된다네!' 얼룩덜룩한 비둘기는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뱀은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뱀은 그동안 바위에 몸을 긁어보기도 했고, 연못에 들어가 몸을 씻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희미하게나마 몸에 희어지는 듯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흰 빛깔이 오래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바람에 뱀은 끝없이 고행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흰 비둘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몸이 희어진다니? 3년 동안 이토록 힘들게 노력했는데도 실패했건만 그렇게 쉽게 희어질 수가 있다니? 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으니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그러고보니 얼룩덜룩한 비둘기는 어딘가 어리숙해 보였다. 그래서 그의 말이 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다.

 

뱀은 그런 방법을 어디서 들었는지 물어보았다. 얼룩덜룩한 비둘기는 부엉이 선생에게 그 방법을 배웠다고 대답했다. 뱀은 즉시 그 부엉이를 찾아가려 했다. 그런데 숲 속에는 부엉이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고 있었다. 그 부엉이는 성질이 고약하고 말을 함부로 해서 그를 선생으로 모시려 하는 짐승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다. 더 나쁜 소문은 그 부엉이의 가르침이 다 틀렸다는 소문이었다.

 

뱀이 부엉이의 가르침을 수소문하여 들어보니 그 이치는 합당해 보였지만 그 말이 너무 매서웠다. 전에 새하얀 비둘기를 하늘에서 보았을 때는 마음 한 구석이 따뜻했는데 부엉이의 말은 차갑고 날카로운 검과 같았다. 그래도 부엉이의 가르침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뱀은 그를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그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새하얀 비둘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간절히 찾으면 찾을수록 자신의 모습이 더욱 시커멓게 보이는 게 아닌가! 그 찬란한 흰 빛을 닮고자 하는데 오히려 더욱 검게 보이니 뱀은 말할 수 없이 마음이 괴로웠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덜컥 들었다. 다시 예전처럼 바위에 몸을 긁고, 연못에 몸을 씻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자기 몸을 괴롭게 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기에 뱀은 조금만 더 새하얀 비둘기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짖기로 했다.

 

새하얀 비둘기를 전심으로 찾고 찾은지 석달쯤 지난 겨울 무렵이었다. 그날 밤은 유독 춥고 길고 어두운 밤이었다. 검은 뱀은 바위 틈에 또아리를 틀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새하얀 비둘기를 찾고 있었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왔을 때, 뱀은 문득 눈을 뜨고 자기 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머리부터 가슴까지 덮여있던 검은 비늘이 흰 비늘로 바뀌어있었다.

 

뱀은 너무 놀라 한동안 혀만 날름거렸다. 그토록 오랜 세월 피나는 노력으로도 이렇게 찬란한 흰 비늘이 생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뱀은 놀랍고 기뻤다. 부엉이가 가르쳐준 방법이 옳았던 것이다. 뱀은 더욱 열심히 새하얀 비둘기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검은 뱀이 아니었다. 검은 뱀은 찬란하게 빛나는 희고 순결한 뱀이 되었다.

 

그는 오랜만에 호수에 가서 자기 몸을 비추어보았다. 새하얀 비둘기를 부르느라 한동안 그 호수에 찾아가지 않았던 터였다. 호수에 비친 그의 모습은 흰 빛으로 둘러싸여 환하게 빛났다. 그순간, 하늘 위로 새하얀 비둘기가 날아가는 것이 호수에 비쳐보였다.

 

흰 뱀은 황급히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그 새하얀 비둘기는 하늘을 몇 바퀴 돌다가 자기 곁에 날아와 앉았다. 뱀이 처음 이 비둘기를 보았을 때는 비둘기가 너무나 높이 날고 있어서 감히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비둘기는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2017년 겨울)

 

그 후로 뱀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뱀이 살았던 숲에는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가 있다. 그 숲에 살던 짐승들은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흰 뱀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흰 뱀이 흰 비둘기와 함께 찬란한 빛을 발하며 땅 위를 기어다녔다는 전설만이 남아있을 뿐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흰뱀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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