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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

순간의 화를 참아 친구 관계가 회복되었던 일화

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QT 노트를 뒤적이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렇지만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서 블로그에 옮겨본다.

 

 

오늘은 지난 주 목요일, 그러니까 9월 모의고사가 있던 날의 일을 기록할까 한다.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후에 혹시라도 비슷한 일이 생길 때 이 기록을 보고 교훈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사건의 전말은 거의 2주 전부터다. 수능이 100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긴장과 피로의 연속인 나날들을 보내던 내게 시험의 때가 왔으니 바로 민수 - 가명, 룸메이트,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을 기숙사에 지냈다 - 의 스타크래프트 중독이었다. 원래 민수는 게임을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런데 언제였는지 몰라도 룸메들에게 스타크를 배우더니 실력이 급상승하면서 매일 같이 룸메들과 게임을 즐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나도 처음 보는 게임 화면이 신기하기도 하고 게임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해서 한동안은 즐거웠다. 그러나 쉽게 질리는 성향 탓에 나는 얼마 안 있어 그 게임에 흥미를 잃었다. 이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룸메들이 스타크를 너무 오래, 밤늦게까지 하는 것이었다. 게임하는 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잘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PMP 음악을 들으면서 자보려고 했는데 이어폰이 몸에 감기고 아침에 PMP가 방전되어 인강을 들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떠드는 소리를 무시하고 자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신경이 예민해져서 룸메들이 게임을 하다 지쳐서 잠들 때까지 깨어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잠이 들곤 했다. 다음날 학교에서도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졸다가 수업을 놓치고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결국 어차피 누워 있어봤자 잠도 못 자는데 내려가서 공부를 하자 하고 생각해서 1시까지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어찌보면 좋은 영향일지도..). 룸메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기 위한 것이었다. 종종 1시까지 게임을 하는 경우가 있어 분위기를 봐서 게임을 오래 할 것 같은 날에는 2시까지 공부했다. 2시까지 있으면 항상 자습실에 아무도 없다. 가끔은 그런 날에도 계속 게임을 하고 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정말 많이 화가 났다. 몸은 피곤한데 웃고 떠드는 소리 때문에 어김없이 룸메들보다 늦게 잠들곤 했다. 소리 지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사이만 어색해지고 근절되지 않을 것 같아 참았다.

 

그런 날들이 2주간 계속되니 너무 힘들었다. 내가 가장 많이 화가 나고 힘들었던 것은 민수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2학년 때 한번 스크리닝(screening)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진정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대처방식을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지수 - 가명, 같은 반 여학생 - 에게 해봤다가 자수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민수가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지수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흘끗 쳐다보고 말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스스로 지수가 가짜 친구였다고 결론을 내리고 서운해하는 것이었다. 뭔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왜 이 때 일이 생각났느냐 하면 민수야말로 나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게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이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그렇게 못 자게 만들어놓고 그런 줄도 몰랐다. 민수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밀려와서 2주간 말도 거의 안 했는데 그 아이는 스타크를 켜기 바쁠 뿐 내 상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딱 한 번, "요즘 힘들어? 왜 이렇게 말이 없어졌어?" 하고 지나가듯 물은 것이 전부다. 속으로 '니 때문이다. 이 무심한 자식아' 하고 생각했지만 할 게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대놓고 말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민수에게 실망이 커서 아예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2주간 밤늦게까지 스타크를 한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아침기도회(필자의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라 아침에 기도회가 열렸다)에 한 번도 못 나갔고 심지어 반 기도모임도 두 차례나 열리지 않았다. - 민수는 반 기도모임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중책을 맡고 있었다 - 반 기도회에 대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준비를 못해서 안 열었던 적이 한 번은 있는 듯하다.

 

또, 게임하면서 떠들 때, (이걸 민수는 '야부리를 턴다'고 하던데) 욕을 많이 하는 것이 너무 듣기 싫었다. 여자애들 앞에서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을 들으면서 너무 힘들었다. 민수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게 너무 어려웠다. 자기는 수능 안 본다고 남은 배려하지도 않는건가. 내가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눈치도 못 채네. 지수가 가짜 친구면 너는 뭐 진짜 친구냐. 게임에 팔려서 친구고 신앙생활이고 쳐다도 안 보면서. 정죄하는 생각이 정말 따발총처럼 밀려들어왔다. 하기 싫은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도와주지 않는 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 한 번은 스스로 끊겠다고 했던 날이 있었다. 수시반 - 가명, 정시가 아닌 수시를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반으로 민수는 여기에 소속되어 있었다- 에서 스타크를 하다가 문득 자기의 존재 가치에 회의가 들었단다. 그래서 수시반 아이들을 독려해 수시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끊기로 했단다. 방에서도 스타크를 지우더니 안 하겠다고 했다. 민수가 그만두니까 수시반 아이들도, 룸메들도 안 하겠다고 했다. 그 때는 정말 이제야 내 시련의 때가 끝났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말이 끝나고 기숙사에 오자마자 스타크를 하고 있는 그 아이를 보았다. 동현이(가명, 민수와 같이 스타크를 하던 룸메) 말로는 방에서는 하기로 했다나. 그러나 얼마 후 수시반에서도 결심은 끝이 났다.

 

성냄화가 난다... 화가 난다!

 

나는 거의 울분이 터져 병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민수가 너무 한심해보이고 원망스러웠다. 내가 시끄러워서 PMP를 들으려고 할 때 한번은 정훈이(가명, 스타크를 안 하던 룸메)가 "야, 얘가 시끄러워서 이어폰 끼잖아" 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얼마나 고맙던지. 나의 고생을 알아채기라도 한 정훈이와 달리 민수는 아는지 모르는지 게임만 해댔다. 진짜 저런 걸 내가 친구라고 뒀나. 이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동현이와 정훈이를 번갈아 가며 놀려대면서 즐거워하는 그 웃음소리가 너무 끔찍하게 싫었다. 정말 꽥 소리지르고 싶었는데…

 

사람의 성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야고보서 1:20

 

이 말씀 덕분에 화를 참을 수 있었다. 화 내고 짜증내고 싶을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렸다. 아무도 내가 이렇게 마음 고생하고 힘든 것을 몰랐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만은 알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9월 1일이 되어 모의평가를 치르고 밤에 오니 민수가 혼자 있었다. 시험 망쳤다는 불평을 좀 하다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민수가 "나 요즘 영적으로 많이 다운되어있는 거 같애.. 근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하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고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 때문이라고 말하고 단호하게 끊으라고 했다. 이야기를 해보니 게임 때문이라는 것이 점점 확실해졌다. 민수도 그런 것 같다고 인정하더니 게임 때문에 기도도 안 하고 욕만 늘게 된 것, 할 때는 좋았다가 하고 나면 스트레스 받았던 것 등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내가 게임을 하지 않게 된 배경과 욕을 하지 않게 된 배경, 그리고 "네가 얘기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에 사탄이 역사하는 것처럼 게임도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다. 너나 나처럼 게임 안 하던 사람이 하면 통제를 못 하게 된다.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실족하게 하면 끊어야 한다" 등등 그 동안의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민수는 자기 얘기도 털어놓고 내 얘기를 듣고 하더니 정말 끊어야겠다고 했다. 마침 9월 1일이고 하니 바른 생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좋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이 때를 위해서 나를 참고 견디게 하셨나?' 만약 내가 전에 화가 극에 달했을 때 그대로 화를 내버렸다면 어땠을까? 물론 내가 민수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이고 내가 민수에게 그렇게 말한다 해도 민수가 내게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지극히 지당한 생각들이었다. 내가 그렇게 화 안 내고 참았던 것에 대해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할 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수많은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말씀대로 행했고 기대하지도 않던 순간에 문제 해결을 경험했다. 그 때 내 마음 가는대로 화냈다면 사이가 멀어질 뿐만 아니라 민수도 마음이 상해서 제대로 권고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대로 행했을 때 하나님이 때에 맞게 일을 이루셔서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셨다. 정말 이 일은 내가 고등학교에서 받은 기도 응답 중 기억될만한 일이 될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세상의 상식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방식대로 행할 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몸소 깨달았으니 말이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주님만이 내 생명의 길 되심을 찬양합니다!

 

...뒤늦게 생각이 나서 쓴다. 이번 일로 민수에게 마음이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참 고맙고 감사했던 것은 민수가 자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또 나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결단한 것이다. 민수에게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 한 것이다. 본인은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말해봤자 잔소리로만 들릴 것 같아서다. 그런데 민수도 표현을 안 했지 마음 속으로는 자기의 영적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충고하는 말을 거부하지 않고 들어주어서 참 고마웠다. 그래도 바른 말을 노여워하지 않고 들을 줄 아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틀리진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한편으로 좋았던 것은, 지금까지 나는 항상 그 아이에게 빚 지기만 했는데 갚을 기회였다는 것이다. 민수가 하는 말을 듣고 '아, 정말 그렇구나' 하고 돌이켰던 것이 많다. 그래서 항상 빚을 지는 느낌이었는데 민수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이번 만큼은 내가 민수를 돌이킬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다. 마음 속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고 평생의 동역자로 생각하는 아이인데 앞으로도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QT 일기는 이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왜 이 일을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기록된 날짜를 보니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해의 9월 4일에 쓴 일기다. 그 나이에 이렇게 성숙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스스로 기특하게 여겨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도 든다. 지금 내 믿음이 너무나 연약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저 말씀 대신 그 동안 내 머릿속에 들어있었던 생각은 '예수님도 화 낸 적이 있잖아?' 였다. 그래서 마구 화를 내버리는 바람에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도 생겼다. 언제부터 이렇게 내 상황에 유리한 구절들을 골라서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나쁜 습관이 생겼는지… '후에 혹시라도 비슷한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 써놓은 기록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탄식만 나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