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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ity/생각

완악함에 대하여

요즘 완악하다는 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스스로 마음을 돌아볼 때 이 단어가 떠오르는 때가 많아졌다. 네이버의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완악하다는 말은 '성질이 억세게 고집스럽고 사납다'는 뜻이라는데;; 내가 사용하는 의미와 뉘앙스가 좀 다른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완악하다는 표현이 꽤 자주 나온다. 이 말이 나오는 가장 유명한 대목은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이 내리려고 하는 장면이다. '바로(Pharaoh)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완악하다는 말은 완강하다는 말과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영어성경엔 'Pharaohs heart was hard…'라고 되어 있는데 이 표현이 완악하다는 말을 가장 정확히 묘사하는 것 같다. 마음이 굳어져서 옳은 말을 듣지 않는 것. 그것이 완악하다(hard-hearted)는 말의 뜻이다.

 

바로의 완악한 마음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내 마음이 완악해졌다고 느낄 때가 많아졌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가장 최근에 완악함을 느꼈던 건 후원하는 아이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데 그게 귀찮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자책하기는커녕 오히려 변명했던 순간이다. 그 아이에게 써야 할 편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편지를 써야 하는데 귀찮네. 사실 편지 쓰는 데 얼마 안 걸리긴 하지. 그리고 내가 그 짧은 시간과 적은 노력을 들여 편지를 쓰기만 하면 그 아이의 마음에 큰 기쁨이 될 것이다…(아마도?) 그런데도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편지를 쓰는 것이 귀찮아서 편지 보내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좋은 마음으로 후원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귀찮아하고 있구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순간 든 생각들이다. '사실 한 달에 한번씩 돈을 보내주는 것만도 그 아이로서는 충분히 감사할 일이지. 솔직히 돈 많아도 기부 안 하는 사람 많은데 편지 좀 안 쓴다고 그렇게 나쁜 건 아니잖아?' 정말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슬퍼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어나지 않았던 핑계와 변명들을 보면서 선행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오히려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본성의 악함을 다시금 확인했다.

 

돌 같은 마음돌 같은 마음을 제하고 살 같은 마음을 주시기를...

 

예전에는 도리에 맞는 말을 들으면 내가 그 말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살피고 벗어나게 되면 부끄러워할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변명을 쏟아낸다. '솔직히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하겠어?',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문득문득 일어난다. 바른 말에 점점 둔감해진다. 어떤 때는 변명하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멍할 때도 있다. 안타까움도 없고 애통함도 없다. 이런 때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든다. 잠들어있다가 잔칫집 문이 닫힌 뒤에야 땅을 치며 후회하는 어리석은 손님이 될까봐.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둔해져 가는 걸까. 양심을 돌아가는 칼날에 비유했던 어느 아프리카 부족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칼날이 날카로워 가슴이 아프지만 양심을 계속 무시하면 칼날이 닳아서 아프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 같은 자리에 상처가 자꾸 나면 굳은살이 생기는 것처럼 옳은 말에 자꾸 찔려서 마음에 굳은 살이 생긴걸까. 마음의 경화(硬化)를 멈추고 다시 부드러운 살이 돋아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사실 답은 알고 있다. 나로서는 할 수 없다. '내가...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이 말씀을 바라고 기다릴 뿐이다.